그는 개구쟁이 아이였다.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장난치는 말썽꾸러기 아이였다. 그는 어느날 집 근처에서 뛰어놀다가 뚝방 아래 개천으로 떨어졌다. 떨어질 때 잠시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울고 있고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눈으로 자꾸 들어왔다. 뚝방 위를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누군가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다. 아이의 아버지다.병원 수술대 위에 그는 누워있다. 두 팔을 간호사들이 잡고 있고 의사가 그의 이마를 실과 바늘로 꿰매고 있다. 아이는 고통 때문에 몸부림친다. 간호사들이 아이의 팔을 더 세게 붙잡는다. 수술실엔 아이의 고통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그 방은 아이에게 너무 크다고 느껴진다.아이는 육체적 고통이 무엇인지 실..
그는 자신의 가장 오래된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옛날식 집이다. 마당이 있고 툇마루가 보이고 그 안에 방이 있다. 방 안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여자는 뭐라고 남자에게 말을 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소리를 지른다. 남자가 세수대야를 마당으로 던진다. 세수대야가 마당에 나뒹굴고 아이의 앞에 멈춘다. 남자는 큰소리로 여자를 꾸짖는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린다. 마당에 앉아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도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슬프다.그가 기억하는 또다른 오랜 기억은 손을 다친 동생이다.그의 아버지는 집에 공장을 차렸다.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 하는 시기였다. 국수기계를 설치해 놓고 국수를 뽑아서 건조대에 널어서 말린다. 말린 국수를 포장해서 자전거에 싣고 가게로 납품하러 다닌다. 국수가 기계에서 만들어져 ..
세상을 가지려고 애쓰지만, 내가 보기에 안되는 일이다. 세상은 신기한 것이라서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억지로 뭘 하려고 하면 결국 망치고, 가지려고 하면 잃는다. 모든 일은, 앞서 갈 때도 있고 뒤처질 때도 있다. 따뜻한 바람이 불 때도 있고 차가운 바람이 불 때도 있다. 강해질 때도 있고 약해질 때도 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심하고 과도하고 지나친 것을 하지 않는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培或隳.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내가 생각보다 잘 걷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729km를 걸으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마 중도에 포기할 거야. 못 걸을 거야. 힘들거야. 미리 겁을 먹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는 느리지만 꾸준히 매일 걸었다. 중도에 위기가 있긴 했다. 걷기 시작한지 7일 째 되는 날, 발에 물집이 여러 군데 생겼고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발을 땅바닥에 디딜 때마다 수십개의 바늘이 발바닥을 찌르는 듯 했다. 배낭을 집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지팡이가 거슬렸다. 걷는데 방해됐다. 그래서 지팡이를 버렸다. 그랬더니 걷기가 좀 나아졌다. 지금도 그 길에 지팡이가 남아있을까 궁금하다.산티아고에서 포르토까지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갔는데 3시간 걸은 것보다 더 피곤했다. 멀미가 나고 어..
오늘은 팜플로나로 간다. 우리가 산티아고길을 생장에서 시작하지 않고 팜플로나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는, 우선 우리의 체력을 믿을 수 없었다. 생장에서부터 시작하면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그러면 초장에 체력이 바닥나서 며칠 못가 포기할까봐 염려되었다. 산 위에서 나는 더이상 못가, 포기야, 이러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쉽게 시작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생장부터 산티아고길을 시작했어도 우리는 충분히 완주할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의 체력을 너무 몰랐고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처음 걸을 땐 힘들지만 걸을수록 체력은 좋아지고 덜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걸을수록 체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
햇볕이 뜨거웠다.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그늘에서는 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겉옷을 통해 전해졌다.문득 작년 산티아고길을 걸을 때가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고 있었다. 뜨겁고 강렬했던 햇볕 아래 하루 평균 25km의 길을 매일 걸었다. 땀은 쏟아지고 살갗은 햇빛에 타고 다리와 발바닥은 통증으로 아프고, 그래도 계속 걸었다. 만일 일년 내내 걸으라고 한다면 걸을 수 있을까?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걸으면서 보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난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정말? 정말이다.남은 소원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걷는 것이다. 걷고 마시고 쉬고 잠자는 것의 끝없는 반복순환. 이것만큼 완벽한 인생이 없다는 것을 나는 산티아고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