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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런던, 캐리어 분실

무니muni 2018. 12. 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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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가방을 잃어버리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시작은 로마공항에서 시작된다.
로마 공항에서 런던으로 가기 위해 예약한 모나크 항공사에서 티켓발권 수속을 받던 중에 문제가 생겼다. 화물로 부치려던 캐리어의 무게가 미리 예약한 무게보다 초과된 것이다. 그래서 가방을 열어서 무거운 것들을 빼내서 다른 가방으로 옳기고 다시 무게를 재서 겨우 가방을 화물로 부칠 수 있었다. 이런 해프닝이 불행의 전조였다.
런던 공항에 도착하면 우선 입국할 때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간단하게 인터뷰를 하게 된다. 왜 왔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어디에 묵는지, 언제 떠날 것인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머리가 온통 지끈거렸는데, 가방을 찾으려고 기다리는데 우리 가방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 잃어버린 가방을 신고하는 데스크로 가서 신고서를 작성했다. 가방을 잃어버린 사람이 우리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 항공사 도대체 오늘 화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접수를 받는 직원은 60대로 보이는 할머니였다. 우리 말고도 다른 두 사람도 조용히 당황한 표정으로 신고서를 작성했다. 할머니는 이런 일이 흔히 있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가방을 찾으면 니네가 머무는 호텔로 가방을 보내 줄 거니까 걱정하지마, 이렇게 할머니는 말했지만, 찾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맥이 풀린 우리는 힘겹게 출국장을 나와서 공항로비에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알 수 없는 전화번호였지만 받았더니 조금전 신고서를 접수하던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니네 가방을 찾은 것 같은데 이러저러하게 생긴게 맞니? 할머니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말을 잘 알아듯지 못하자, 너 지금 어디있니? 공항 출국장 앞 로비에 있다고? 기다려 내가 갈테니까. 조금 있다가 그 할머니가 공항 로비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망가스티커가 많이 붙어있는 샘소나이트 가방이 니네 가방이니? 네, 맞아요. 그게 우리 가방이에요. 겨우겨우 우리의 가방임을 확인받은 할머니는 그 가방이 아직 로마에 있는데 런던에 도착하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가방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공항을 떠났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 가방은 아내의 짐이 대부분이었고 내 짐은 작은 가방에 따로 들어있어서 잃어버리지 않았다. 잃어버린 짐 속에는 친척들에게 줄 선물과 우리가 산 책들 등등 중요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약이었다. 고혈압약이 그 가방에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문제는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라서 당장 다음날 가방을 찾지 못하면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금방 가방을 찾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음날도 다음날도 가방은 오지 않았다. 아내는 혈압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결국은 영국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소문해서 영국병원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으려고 했는데 약의 이름을 몰라서 처방전을 써줄수 없다고 한다. 아내는 다니던 한국의 병원에 전화해서 약의 이름을 알아냈다. 다시 영국병원으로 가서 약의 이름을 알려줬더니 이제는 용량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다시 아내는 한국의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병원직원은 영업시간이 끝나서 컴퓨터를 방금 전에 꺼서 알려 줄 수가 없다면서, 다음날 다시 전화하라고 한다. 우리가 사정이 급하니 좀 알려달라고 해도 병원직원은 안된다며 전화를 끊는다. 아내의 두통이 심해지고 있어서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은 위험해보였다. 결국 우리는 처음에 갔던 국립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 것을 포기하고 사설개인병원으로 가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수 있었다. 꽤 큰 금액의 돈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금방 올 것 같던 가방은 소식이 없었고 결국은 분실한 날로부터 9일 뒤 한국에 귀국하는 날에 가방도 집으로 택배로 오게 되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은 찾아서 다행이었다. 그때문에 영국에서 병원을 세 번이나 방문해서 처방전을 받아내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또 가방을 찾기 위해 항공사 직원과 몇 번을 통화하느라 머리는 얼마나 쑤셨는지, 내가 영어만 좀더 능숙하게 했더라면 덜 힘들었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우리는 비행기를 탈 때 중요한 물건은 화물로 부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아예 기내용 가방만 휴대한 채로 여행을 다니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처음 진료를 받은 국립병원이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대사관 같은 곳에서 문자가 온다. 현지에서 숙지할 사항들을 문자로 보내 주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써있어서 전화를 했었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병원에 가서 처방전 받으라는 말뿐이었다.

영국의 약국에서 구입한 혈압약이다. 이후로는 여행 다닐 때 복용하는 약의 영어이름과 용량을 메모해서 가지고 다닌다. 혹시 이런 일이 또 생길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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