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써보기로 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밥이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다. 잠을 자고 꿈을 꾼다. 지난 밤에도 꿈을 꿨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파편처럼 조각난 기억을 붙들고 짜맞추려 한다. 어떤 감정의 흐름을 기억한다. 좋다거나 편안했다거나 흥분했다거나 겁이났다거나 놀랬다거나. 어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나는 주인공이었다. 사과나무와 농부를 기억한다. 강물 위에 지어진 집과 높이 쌓여있는 통나무 더미들. 어떤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대답한다. 기억나지 않는 대화. 어떤 장면은 기억하고 어떤 장면은 기억하지 못한다. 꿈을 꾸고 꿈을 잊는다. 잠을 깨면 사라지는 꿈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뒤척이다 겨우 잠들고. 늦게 먹은 빵 두 조각을 후회하고 짧은 하루를 아쉬워하며..
오랜만에 공원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그동안 미세먼지 탓에 밖에서 운동하는 것을 자제했었다. 점심으로 중국음식을 먹었는데 탈이 났다. 계속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앉아 있는다. 도대체 음식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사먹는 음식이 겁난다. 안사먹을 수도 없고. 사먹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먹기도 어렵다. 더큰 문제는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한사람만 탈이 나는 경우이다. 배아픔이 커질수록 먹은 음식의 목록을 잊지않으려고 한다.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공격한다. 화장실에 앉아 죽을 것만 같다. 입으로 고체의 형태로 들어간 음식물이 액체의 상태로 아래로 흘러나온다. 그냥 흘러나오지 않고 아랫배에 통증을 주면서 나온다. 다음부터 조심하라는 경고의 신호를 강하게 보낸다.
시계를 보니12시 10분전이다. 직원 식당으로 걸어간다. 4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메뉴는 비빔밥이다. 고기를 뺀 비빔밥을 달라고 아주머니께 부탁한다. 상추와 콩나물과 밥을 비빈다. 고추장을 넣지 않고 간장을 넣는다. 양념간장이 밴 두툼한 두부찜이 쟁반 위에 네줄로 정렬해서 놓여있다. 나는 그중에 세 조각의 두부를 내 식판에 옮겨담는다. 음식을 더 담을 것인지 0.1초 동안 생각하는 순간 몸은 이미 그곳을 지나쳐간다. 본능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이 먹으면 않된다는 뇌의 명령을 어기고 손은 음식을 넘치도록 퍼담고 있고 순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의식적인 느낌과 본능적으로 몸속에 영양분을 축적하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은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하늘에는 구름이 없다. 구름이 없으므로 빛이 가득한 파란색이어야할 하늘이 파랗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고 회색 먼지가 낀 불투명한 창문을 보는듯하다. 맑은 하늘이라고 절대 부를 수 없는 하늘이다. 나는 먼지낀 안경을 쓰고 걷는 듯 눈앞이 흐리다. 보이지 않는 먼지가 눈알을 간지럽힌다. 하얀 마스크를 입과 코에 밀착시키고 숨을 쉰다. 숨쉬기가 불편하다. 공기는 필터를 거치면서 조금씩만 안으로 들어와 숨쉬기를 힘들게 한다. 외출을 급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쇼파에 드러눕는데 이상하게 피곤하다. 목소리를 낼 때마다 목구멍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박힌듯 미세한 통증과 거친 바람소리가 나온다. 집안을 뛰면서 모자란 운동을 한다.
밥을 사먹으러 어느 식당에 갔다. 그런데 확장이전을 했다고 가게 앞에 현수막이 붙어있다.이전된 가게로 가보니 새로 인테리어를 하고 전보다 공간이 넓어졌고 테이블도 많아졌다. 음식 가격도 전보다 천원 인상됐다. 맛은 변하지 않았다.점심 피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들은 많았다. 전에는 테이블이 적어서 항상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실내도 전보다 깔끔하고 사람들도 기다리지 않으니 좋아지기는 했다.이 가게가 장사 잘되는 비결이 뭘까? 싼 가격, 푸짐한 양, 맛, 이것이 장사의 비결인 것 같다. 장사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핵심이다.
모든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늘 공허하게 발버둥을 쳤다...그러던 차에 나는 어떤 쓸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창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 만년 노트를 펼치자 이 문장이 첫 페이지에 쓰여있다. 오래전에 쓴 일기장이다. 글쓰기란 쓸쓸한 배출구라는 말이 슬프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홀로 책상에 앉아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는 일이다. 이렇게 써나가다보면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정신적인 배설이다. 싸질러 놓은 것들이 똥같은 것도 있고 보석처럼 빛나보이는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병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