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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택시 4

무니muni 2018. 8. 10. 19:19

멀리 수평선에서 파도가 몰려 온다

야자나무 잎이 거세게 흔들린다

센 바람은 큰 물결을 몰고온다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너울은 더 커진다

너울은 검은 바위에 부딪치고

하얀 파도로 부서진다

너울이 높을수록 파도는 높이 솟구친다

하얀 거품을 흩뿌리고 파도는 사라진다

바다로 되돌아 간다


어제 밤에는 공항에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이 많았다.

강풍 탓에 비행기가 연착됐고 밤 11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공항에는 택시를 타려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사람은 많았고 택시는 별로 없었다. 난 공항과 시내를 계속 왕복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제주의 매서운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서 있어야 했다.

젊은 남자가 조이의 택시에 탔다.

“한림항으로 가주세요.”

“네. 오래 기다리셨죠.”

“택시 잡기 너무 힘드네요. 바람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드네요.”

조이는 택시를 몰아 공항을 빠져 나갔다.

둘은 더 이상 아무말이 없다.

택시 안은 엔진의 소음만 들릴 뿐 조용하다.

조이는 택시 안에서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놓지 않는다. 승객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말을 아낀다. 승객들을 위해서다.

택시기사의 쓸데없는 얘기를 억지로 듣는 것도 곤욕이고 듣기 싫은 음악을 듣고 있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조이는 승객들의 대화를 듣거나 생각을 한다.

배가 고프다.

조이는 간식으로 사온 마들렌을 꺼내 남자에게 권했다.

“마들렌이예요. 드세요.”

“어, 고맙습니다. 맛있네요.”

조이도 마들렌을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계란과자 맛이다.

한림항에 도착했다. 거리엔 사람이 없다.

“여기 세워 주세요.”

한적한 곳에 남자는 내렸다. 호텔도 아니고 게스트하우스도 아닌 항구 뒷골목이다.

아마도 이 곳에 일하러 온 듯하다.

일하러 제주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

건설일 하느라 5년 째 제주에 사는 사람을 태운 적이 있다.

아내와 자식은 경기도 살고 혼자 제주에서 일하고 있다는 중년 남자다. 서글서글하고 사교성있는 사람이었다.

“아내에게 제주에 내려 와 살자고 해도 싫다네요.”

남자는 혼자 살기 너무 외로워서 중국 여자를 사귀었다고 한다.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서슴없이 택시기사에게 하는 이유는 뭘까? 남자끼리니까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걸까.

그 남자는 택시에서 내릴 때 팁을 두둑히 줬다. 마치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사례를 하는 듯했다.


조이는 용두암 근처 해안도로에 주차를 했다.

오늘은 바람이 세다. 이런 바람엔 서 있기도 힘들다.

너울이 높게 몰려와서 바위를 부서버릴 듯이 내리 친다. 하얀 거품이 하늘로 나른다.

택시 앞유리에 거품이 떨어져 유리가 지저분해진다.

조이는 너울을 보며 공포심을 느낀다. 파도가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달려든다.

조이는 갑자기 저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그 방법 뿐이라고 느꼈다.

공포심은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려는 행동은 어디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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