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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택시 11

무니muni 2018. 8. 10. 12:54

밤이다. 그믐달이 보인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을 헤치고 산속으로 올라간다. 막다른 길에 건물 불빛이 보인다. 이런 외진 곳은 나도 무섭다.

가방을 든 한 남자가 나온다. 택시에 탔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남자는 혼자말을 한다. 이렇게 빨리 온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내가 이곳을 먼 곳에서 일부러 올 일은 결코 없다. 근처에 왔는데 때마침 호출이 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오늘 운이 좋은 것이다.

밤 운전은 힘들다. 빛이 없다는 것은 시야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고 사고날 확률이 높아진다.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도로에는 속도를 높이지 못하게 만든 둔턱이 여러곳 있다. 밤에는 이것을 잘 보고 속도를 줄여야 한다. 안그러면 큰 충격소리와 함께 몸이 위로 솟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깜짝 놀라서 심장에도 충격이 온다. 승객이 함께 타고 있다면 좀 죄송해진다.

한참을 가로등이 없는 길을 내려와서 시내로 접어들었다. 이젠 좀 안심이다. 문명의 불빛은 안전하다는 안심을 준다. 어둠은 야생, 위험, 공포다. 인간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만큼 야생에서 멀어졌다.

호텔 앞에 멈췄다. 요금보다 많은 금액을 내고 남자는 사라졌다. 외진 곳까지 빨리 와줘서 고맙다는 뜻이다. 원래 팁을 잘 주는 인심좋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가끔 팁을 받는다. 동전은 괜찮다고 받아가지 않는 사람, 술김에 기분이 좋아서 웃돈을 주는 사람, 택시를 잡기 어려운 날에 택시를 잡기 어려운 곳에서 태워줘서 고맙다고 팁을 주는 사람, 팁을 받으면 금액이 얼마 아니더라도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남자와 여자가 택시를 탔다. 남자는 택시에 타기 직전까지 담배 연기를 뿜고 있었다. 담배냄새가 차안에 퍼진다. 택시에 타는 사람에게는 각자 고유한 냄새가 난다. 고기냄새, 술냄새, 화장품냄새, 샴푸냄새, 비누냄새, 땀냄새, 그리고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냄새.

남자는 커다란 카메라 삼각대를 들고 있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여자는 남자를 선배라고 부른다. 직장 선배인 듯. 내일 새벽에 일출 사진을 찍으러 4시 30분에 나가야 하는데 나에게 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난 그때 교대시간이라 회사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라 안된다고 했다. 가끔 새벽에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나에게 올 수 있느냐고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만일 내가 개인택시라면 물론 그 부탁을 들어줬을 것이다. 회사택시라도 교대없이 한 차를 한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좀 특별한 경우이고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나는 한 차를 두 사람이 교대로 타고 있다.

외곽으로 길을 달려서 목적지에 거의 왔다. 좌회전을 하자 좁은 길이 나타났고 좌우로 거대한 풀들이 길을 반쯤은 막고 있다. 풀잎이 창문에 부딪친다. 집앞에 도착했다. 남자와 여자는 내렸고 요금을 계산했다. 카드를 냈는데 카드기계가 먹통이다. 가끔 외곽에 오면 통신불량이 뜨면서 카드기계가 안된다. 결국 현금으로 계산했다. 차를 돌려 나와야 하는데 길이 좁아서 겨우 차를 돌려 나올 수 있었다. 벽에 한번 부딪쳤는데 다행히 약하게 닿아서 상하진 않았다.

진입로의 풀을 왜 안깎느냐고 물으니 땅주인이 풀을 안깎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맘대로 남의 땅의 풀을 깎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땅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길을 쓰는 사람에게 원한이 있거나 방치된 땅이거나, 하여튼 사연은 모르겠지만 그곳에 살면서 이건 좀 문제가 있는 듯한데 해결이 안된다니 어찌 된 영문인지 이상한 동네다. 진입로 초입에 집이 한 채 있는데 개가 짖는걸 보니 그 집에서 풀을 깎든지 하면 될 것도 같은데, 풀이 사람키보다도 높이 자라있어 사람이 지나다닐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동네다.


도로 위로 사람이 내려와 손을 흔들며 택시를 세운다. "자, 어서 타!" 얼굴이 검게 탄 세 남자가 차에 탔다. 세 사람의 술냄새가 차안에 가득 퍼진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2단으로 높혔다. "기사님, 동그라미 노래방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그럼 네모 사거리로 갑시다." 사람들은 택시기사가 이름만 입력하면 어디든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인지 안다. 경험많은 택시기사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난 아직 아니다.

앞 자리에 앉은 사람이 윗사람이고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아랫사람이다. 술이 거하게 취했는지 혀는 꼬불아졌고 큰 소리로 떠든다. "내일은 좀 쉽시다. 오늘은 신나게 놀고 며칠 쉬자구요." 뒷사람들의 말에 앞사람 안색이 안좋다. 이 사람이 오야지인 듯. 오야지는 난처하다. 일을 시키려면 아랫사람들 비위도 맞춰야 하고 욕안먹고 일을 계속 하려면 공사일정을 따라가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형님, 카드로 내는 것보다는 현금으로 계산하죠. 제가 현금이 없네. 형님이 현금으로 계산하쇼." 뒷좌석사람들이 황급히 내린다. 앞좌석 형님은 주머니를 한참을 뒤져서 현금을 찾아냈다. 밤인데도 썬글라스를 낀 얼굴이 검은 남자는 나를 보며 웃으면서 한마디한다. "개새끼들!" 오늘도 형님은 후배들 유흥을 위해서 밤새 물주노릇을 해야 할 것이다.


공항이다. 밤 9시 45분. 택시는 없고 택시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백 명이 넘어 보인다. 밤 10시가 돼야 택시가 몰려든다. 2200원 짜리 제주공항 야간운행 보상쿠폰을 주기 때문이다. 그 쿠폰을 받으면 기본요금 2800원에 플러스 2200원이니까 기본요금이 오천원이 된다. 가까운 곳에 가더라도 오천원이 보장되니까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 온다. 먼 곳으로 가면 2200원이 더해지는 것이 큰 차이처럼 느껴진다. 기본요금 2800원은 좀 적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요금을 좀 더 올려야 하지 않나하고 나는 생각하는데 시민들 입장에서는 싫어할 것이다. 내가 버는 것으로 계산해보니 시급이 최저임금에도 한참 모자란다. 물론 개인택시는 회사택시 보다는 훨씬 남는 것이 많으니 똑같이 계산할 수는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회사택시기사의 경우다.

하여튼, 10시 전이라 공항에 들어가자 마자 승객을 태웠다. "경마장으로 가주세요." 어, 밤에 경마장? 경마장 근처에 집이 있는가, 난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좀 먼거리다. 경마장에는 일요일에 딱 한 번 가봤다. 오해마시라. 경마를 하러 간 건 아니다. 승객을 데려다주러 갔으니까. 일요일엔 경마장에 사람들로 붐빈다. 아직 한 번도 경마경기를 직접 본 적도 없고 돈을 걸어본 적도 없다. 궁금하긴 하다.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택시기사들 중에도 주말에 경마도박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30만원을 벌었네, 오늘 공쳤네, 하며 사람들에게 푸념을 하는 기사가 있다. 그는 왜 경마도박을 하는걸까? 어떤 재미가 있는 걸까?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예전에는 로또를 가끔 산 적이 있다. 로또를 살 때는 꿈에 부풀었다. 당첨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온갖 상상을 한다. 빌딩을 사고 여행을 다니고 집을 사고 일주일은 상상으로 행복하다. 결국은 휴지로 변한다. 또 로또를 사고 일주일치의 행복종이는 또 휴지가 된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산다. 잠시의 쾌락을 위해서 돈을 쓴다. 뭐 따지고 보면 다른 것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우리를 유혹한다. 아주 적은 확률이더라도 거기에 돈을 건다. 어리석은 것인지 낙관적인 것인지. 요즘은 로또를 안산다. 스팀을 샀기 때문이다. 스팀은 도박인가?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했다. 요즘은 포기했다. 가격이 얼마가 되든 신경을 안쓰려고 하는데 가격이 많이 떨어지니 좀더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욕심일까? 그동안 많이 샀는데 또 사고 싶은 것은 무슨 심리일까? 더 산다고 만족할까? 남는 돈이 있다면 좀 더 사겠지만 그렇지가 않으니 참아야 한다. 지금 스팀을 사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스팀잇을 시작한 것은 글쓰기에 보상이 따른다는 시스템을 보고 여기에 투자한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것이라 봤다. 이 시스템에 문제점도 있지만 앞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난 노후에 글쓰면서 그 보상으로 생활비의 일부를 충당하고 싶다. 지금 내가 내고 있는 국민연금은 충분한 노후 생활비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그 사람, 공항에서 탄 그 남자는 경마장 안으로 들어가서 숙소인 듯한 곳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말타는 기수인 것 같았다. 체격도 작았다. 옆자리에 앉아서 가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히든싱어 홍진영 편이다. 흥겨운 트로트 음악이 울려 퍼진다. 흥이 많고 항상 업되어 있는 여자, 실제의 모습인지 방송용 모습인지 알 수 없으니 그를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항상 쾌활한 사람에게도 그림자는 있지 않을까. 오늘 본 에일리 편에서는 원조가수가 중간에 탈락했다. 원조가수가 탈락하는 편이 재미는 더 있다. 너무 뻔하면 재미가 없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것이 재미있는가 보다. 에일리는 살이 쪘지만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남신경쓰지 않는 모습이 용기있고 자신감있어 보인다.


어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택시 안에서 만났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에서 지워졌다. 아무일이 없었거나 내 기억력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 메모를 해야겠다. 차 안에 메모장과 볼펜을 뒀는데 쓸모없이 굴러다니기만 하고 저 걸 언제쓰나 하고 볼 때마다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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