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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한인민박집에서 우리는 장기투숙자였다.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
기억나는 사람들이 몇 있다. 브라질에서 옷장사를 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브라질에 오면 재워주겠다며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았다. 브라질의 집에 방이 많다면서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브라질에 가야할 일이 있긴한데 언제 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억나는 또 한 사람은 직장에 다니는 아가씨였는데 휴가를 왔다고 한다. 그런데 쇼핑을 너무 많이 해서 큰 캐리어를 하나 더 구입해서 꽉꽉 채워서 한국에 돌아간다고 한다. 이 아가씨를 기억해보니 요즘 제주에 오는 중국인 관광객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큰 캐리어에 한가득 쇼핑한 물건을 채워서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사람이 있었는데, 혼자서 여행 온 15살의 중학생 여자 아이가 있었다. 여행을 보내준 이 아이의 부모가 대단해 보였다. 혼자서 파리구경을 잘하고 다닌다.
민박집에서 아침밥을 준비하는 '이모'라 불리는 사람이 둘 있었다. 사실 민박집 사장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민박집의 관리는 이 두 사람이 다 하고 있었다. 청소며 식사준비며 현지에서의 연락도 이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내가 사장과 접촉한 것은 예약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다. 이모들의 국적은 알 수 없지만 말투로 봐서는 중국교포라고 짐작이 됐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지금도 이 한인민박집이 영업을 하고 있던데 '이모'들이 아직도 있는지 괜히 궁금하다. 다시 그 민박집에 묵는다면 우리를 기억할까?

숙소에서 나와서 빅도르 위고역으로 걸어가는 중간에 줄서서 빵을 사는 가게가 있다. 우리도 줄서서 빵을 샀다. 커다란 바게뜨빵을 사서 가지고 다니면서 출출할 때마다 뜯어 먹었다. 이 바게뜨빵의 가격은 보통 1유로를 넘지 않는다. 이거 하나면 두 사람이 먹고도 남는 양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도착했다. 역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파리의 미술관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가장 먼저 본 것은 모네의 수련관이다. 타원형의 방으로 들어가면 벽면을 빙둘러서 그림이 벽에 그려져 있다. 모두 수련 그림이다. 이때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찍어 놓은 사진이 없다. 수련이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모네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나이가 아주 많았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그렸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타원형의 전시관 중심에는 의자가 있는데 의자에 앉아서 하얀 천장과 하얀 벽면과 둥근 모네의 수련 연못을 바라보는데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둥근 공간에 메아리치며 울린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원래 오렌지 나무를 위한 온실로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빛이 잘 들어오는 구조로 되어있다. 지하로 내려가서 화가들의 작품을 만났다. 오랑주리는 그런 느낌이다.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알짜배기만 모아놓은 느낌.

모딜리아니, 젊은 견습생.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멈췄다. 36살에 요절한 젊은 화가 모딜리아니, 그가 죽고 나서 이틀 뒤에 연인이던 잔은 자살했다. "그림 속 의자에 앉은 청년은 모딜리아니 자신이고 어머니의 선조 스피노자이고 명상에 빠진 붓다이고 그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이다."

피카소, 포옹.
벌거벗은 두 남녀가 서로를 껴안고 있다. 임신한 여인의 배는 불룩하고 남자의 성기는 아래로 축처졌다. 전혀 에로틱하지 않은 누드는 우울하고 슬프다. 피카소에게도 우울한 시기가 있었다.

르누아르,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들.
밝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물감의 빛을 타고 흘러 나온다.

오랑주리에서 나와서 로댕 미술관으로 향했다.

로댕, 생각하는 사람.

로댕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내맡김-샤쿤탈라.
로댕과 카미유의 사랑은 카미유를 파멸로 이끌었다. 카미유는 로댕을 저주하며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지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사랑은 때론 파괴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뒤로 하고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앞에 있는 큰 나무는 원래부터 있던 나무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성당을 가리고 있다.

성당 안의 스테인 글라스가 정말 섬세하고 아름답다.

성당 옆에 있는 어느 가게에서 뱅쇼와 크레페를 사먹었는데 너무 추워서 떨면서 먹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옆과 뒤도 웅장하다. 앞만 보지 말고 옆과 뒤도 둘러보자.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유명한 서점이 있다. 바로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이다.

영화 <비포 선셋>의 첫 장면이 이 서점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1919년에 영어전문서점으로 문을 열었고 헤밍웨이의 단골 서점으로도 유명하다. 서점이 아주 비좁고 작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재미있는 공간이 있다.

이 서점이 특별한 것은 특별한 조건만 갖춘다면 저 소파에서 기한없이 무료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조건은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서점일을 도와주고 하루 1권의 책을 읽고 퇴소할 때 1장의 에세이(자기소개서)를 쓴다는 조건이다.
이곳에서 음악이 함께하는 독서토론회도 열리고 소소한 티파티도 열린다고 하니 재미있는 곳이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샀고 책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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