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팜플로나로 간다. 우리가 산티아고길을 생장에서 시작하지 않고 팜플로나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는, 우선 우리의 체력을 믿을 수 없었다. 생장에서부터 시작하면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그러면 초장에 체력이 바닥나서 며칠 못가 포기할까봐 염려되었다. 산 위에서 나는 더이상 못가, 포기야, 이러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쉽게 시작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생장부터 산티아고길을 시작했어도 우리는 충분히 완주할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의 체력을 너무 몰랐고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처음 걸을 땐 힘들지만 걸을수록 체력은 좋아지고 덜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걸을수록 체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
햇볕이 뜨거웠다.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그늘에서는 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겉옷을 통해 전해졌다.문득 작년 산티아고길을 걸을 때가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고 있었다. 뜨겁고 강렬했던 햇볕 아래 하루 평균 25km의 길을 매일 걸었다. 땀은 쏟아지고 살갗은 햇빛에 타고 다리와 발바닥은 통증으로 아프고, 그래도 계속 걸었다. 만일 일년 내내 걸으라고 한다면 걸을 수 있을까?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걸으면서 보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난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정말? 정말이다.남은 소원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걷는 것이다. 걷고 마시고 쉬고 잠자는 것의 끝없는 반복순환. 이것만큼 완벽한 인생이 없다는 것을 나는 산티아고길에서 ..
요즘은 어미 고양이 미노가 안보이고 아들 민수가 매일 와서 밥을 달라고 보챈다. 그러다가 옆집 동생 고양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담장 위에 앉아 있는 녀석이다. 약간 슬픈 얼굴이다. 꽃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민수는 성깔이 있고 다급한 성격이다. 밥을 줄 때까지 계속 소리를 지르며 쫓아다닌다. 지가 상전인줄 안다.길고양이지만 이젠 집고양이처럼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근처에 있는다. 그러다 며칠 밥을 주지 않으면 더이상 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매정한 녀석들이다. 다시 불러오는 것은 쉽다. 밥을 내놓으면 어떻게 알고 다시 온다. 그들은 인간을 밥주는 기계로 본다. 감정도 없다. 나도 감정없이 대하기로 한다. 감정은 상처를 남긴다.우리집에 남는 고기가 있으니 주는거야. 이놈들 육식이라 고기만 먹는다...
지난 주말에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어느 학원 단체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학부모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이들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둘러보니 잘 그린 그림들이 눈에 뛴다. 아이들의 작품이지만 색깔이나 표현력, 상상력이 자유로웠다. 나도 학생 때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림을 그릴 시간도 여유도 나지 않는다. 저런 표현력도 없는 것 같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요즘은 그저 글쓰기만 하고 있다.그림 속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글쓰기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연습을 하고 있다. 글쓰기든 그림이든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인다.그림으로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나는 이야기로 그림을 그린다.
필기구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문구점에 가면 노트와 볼펜을 꼭 둘러보고 맘에 드는 것을 골라 구입했다. 필요해서 산 것이 아니라 우선 사놓고 언젠가는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충동구매이기도 하고 아니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필기구를 사는 것으로 그 욕구를 대신 충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노트는 언젠가 글씨로 가득 찰 것이라고 상상한다. 빈노트를 사는 것은 아직 쓰여지지 않은 글을 사는 것이다. 색연필은 언젠가 흰 도화지에 점과 선으로 변하고 의미있는 색깔과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색깔은 감정을 자극한다. 색깔은 빛이다. 빛은 생명을 만든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창작이고 창작은 생명을 창조하는 일이다. 오늘은 글이 꿈꾸듯이 써진다. 늘 그랬으면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