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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택시 9

무니muni 2018. 8. 10. 18:48

장마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제주에서 맞이하는 첫 장마비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비오는 날 운전은 평소보다 어렵고 위험하고 더 피로하다. 시야가 잘 안보이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운전이 어렵다고 요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비나 눈이 오면 운전을 피하고 싶어진다. 비나 눈이 오면 특히나 택시 잡기 힘든 이유가 많은 기사들이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오는 밤 늦은 시각, 사거리 코너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고 택시를 부른다. 옆자리에 탔다. 머리 희끗한 중년의 남자다. 술냄새가 난다.

“XX초등학교 쪽으로 가주세요.”

“네.”

흰머리의 남자는 금세 잠이 들었다.

얼마후 잠에서 깬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여기가 어디요?”

“ㅇㅇ 사거리입니다.”

“뭐라구요? 왜 여기로 온 겁니까?”

“이쪽 길이 맞습니다.”

“내가 어디서 탔습니까? 왜 이렇게 돌아서 가는거요? 이런식으로 바가지 씌우는거요?”

이 남자는 자기가 어디서 탔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먼 길로 돌아간다고 화를 낸다. 말이 안통한다.

내가 말로 설득하려해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더 화를 낸다. 이럴땐 가만히 대꾸하지 않는게 상책이다.

옆에서 계속 뭐라해도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목적지까지 가는 수 밖에 없다.

옆 자리의 남자는 안전밸트를 매지 않았다.

난 최대한 속도를 높이며 다른 차들을 추월했다. 옆 자리의 남자가 조용해졌다.

“아! 좀 천천히 갑시다.”

남자는 위험을 감지한 모양이다. 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목적지까지 이제 서너 개의 교차로만 지나면 된다. 이런 속도라면 신호에 걸리지 않고 단번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더 밟았다.

“아, 제가 술에 취해서 말을 좀 심하게 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얌전해졌고 인간으로 돌아왔다.

운 좋게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술은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화가 났을 때도 이성이 마비된다. 이성이 마비되면 결과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지금 하는 짓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 아니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 될대로 되라지. 이런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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