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은 사진촬영 금지라서 미술품을 직접 찍은 사진은 없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다가 출입구 근처에서 몇 장 찍었다.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가 해설을 하면서 일행들을 인솔하는데 우리도 한동안 따라다니며 해설을 엿듣기도 했다.기념품샵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왜 프라도 미술관은 사진촬영을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사진 대신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를 사라는 뜻인지.스페인 화가 고야의 동상, 프라도 미술관엔 고야의 작품이 130여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프라도 미술관 기념품 샵에서 빨간색 에코백을 샀다.아쉬운 마음에 프라도 미술관 바깥에서 배회한다.
PORTRAITS OF KING JUAN CARLOS AND QUEEN SOFIA AT THE MUSEO THYSSEN-BORNEMISZA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갔다. 위 두 그림은 미술관 초입에 있는 스페인 국왕 부부의 초상화다. 왕의 기운을 좀 받아보자. 내 어깨에 매달린 하늘색 장바구니가 웃기다.Portrait of Baron H.H. Thyssen-Bornemisza 1987, Portrait of Baroness Thyssen-Bornemisza 1988-1989. Ricardo Macarrón, Madrid 1926 - Riaza 2004. Collection Carmen Thyssen-Bornemisza.위의 그림은 티센 보르네미사 부부의 초상화다. 국왕 부부의 초상화는 차분하고 점잔은 톤..
바르셀로나를 떠나서 마드리드로 향했다. 우리의 여행은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마드리드에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는 이유로 마드리드를 다음 목적지로 정했다. 마드리드 바하라스 공항 터미널 4에 내리면 먼저 천정의 유려한 곡선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나는 가우디가 생각났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환승을 하려고 기차를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기차가 오지 않는다. 그런데 기다리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다른 플렛폼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스페인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눈치껏 행동하기로 했다. 사람들을 따라가서 기다리다가 오는 기차에 탑승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숙소를 찾는데 이상하게 숙소를 찾을 수가 없다. 엉뚱한 곳에 내린 것이다. 밤이라서 거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다시 갔다. 성당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내부에 들어서자 웅장한 뼈들의 숲이 펼쳐졌다. 거대한 동물의 체내에 들어온 듯하기도 하고 울창한 숲속에 들어온 것같기도 하다. 다양한 모양의 면과 선들로 이루어진 벽과 기둥, 불과 태양 모양의 조명. 붉은 색과 푸른색의 스테인 글라스. 허공에 매달린 예수십자가상. 지하의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나뭇잎으로 장식된 성당입구의 철대문. 예수 수난을 형상화한 조각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입장료는 성당을 건축하는 건축비로 쓰인다고 한다. 우리도 이 성당을 건축하는데 일조한 셈이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할 때 학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마지막 날은 니스 해변에서 햇볕을 쬐면서 와인을 마시고 바다를 바라보며 그냥 쉬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았다.손에 들고 있는 저 술은 로제 와인인데 과일맛이 난다. 해변에 앉아서 병나발을 불었다. 저 때는 술을 참 많이 마셨다. 거의 매일 와인을 마셨다. (참고로 지금은 술을 안마신다.)밥은 숙소에서 매일 해먹었다.바게뜨빵과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 소고기값이 싸서 자주 해먹었다.내가 좋아하는 감자. 감자를 쪄서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매일 밥처럼 먹었다.원래는 니스에서 계속 머물 계획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어서 더 따뜻한 곳인 바르셀로나로 옮기기로 했다. 이 때 우리의 여행 방식은 우선 다음 행선지만 정하고 비행기 티켓과 며칠 간의 숙박만 예약하는 방식이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정..
오후 8시 45분, 프랑스 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졌고 사방은 어둡다. 버스정류장을 찾아서 98번 버스를 탔다. 20여분 달려서 우리는 Gambetta에서 내렸다. 우리가 머물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 숙소 주인에게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아파트 건너편 터키 음식점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잠시후 숙소 주인으로 보이는 프랑스 여자가 나타났다. 서로 인사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열쇠로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숙소의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20제곱미터의 크기의 원룸이고 발코니도 있어서 해변을 볼 수 있다. 해변이 측면으로 보이는 뷰였지만 해변이 가까워서 만족했다.간단하게 숙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는지 티브이는 어떻게 켜고 ..
안네의 집을 방문했다. 이곳은 안네 프랑크(1929~1945)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숨어 살았던 집이다. 안네가 살았던 다락방, 사진, 안네의 일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부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기념품 샵에서는 안네의 일기 한국어 번역본도 팔고 있었다. 안네의 가족은 누군가의 밀고로 독일경찰에게 잡혀가게 되고 포로수용소에서 가족 모두 죽게 되는데 유일하게 안네의 아버지만 살아남아서 안네의 일기를 출판하게 되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안네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일기에 적어놓고 있다. 열여섯의 짧은 생을 살다간 안네는 죽고나서 자신의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죽고나서 이룬 꿈이 무슨 소용인가. 고흐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인생일뿐이다. 안네의 꿈은 하루하루 일기를 쓰고 있..
렘브란트의 집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이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살았던 집인데 렘브란트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의 작픔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초록색 대문, 빨간색 덧창, 파란색 유리창, 알록달록 예쁜 집이다.그당시에 쓰던 주방기구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지금의 우리는 정말 편리한 시대를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렘브란트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 밥을 사먹었다. 비빔밥 비슷한데 잘 먹는다.암스테르담 시내를 늦게까지 쏘다녔다. 야경이 아름답다.암스테르담에는 정말 특별한 것이 있다. 커피숍에 가면 합법적으로 마약을 구할 수 있고 홍등가가 시내에서 합법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서 합법적인 매춘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안락사와 동성결혼도 허용된다. 정말 관용이 넓은 나라다.
전날 슈퍼에서 사온 재료들로 간단한 아침밥을 만들어 먹는다. 바게트빵 속을 잘라서 야채와 치즈를 발라서 먹는다.밤에 호텔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한밤중에 화재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우리는 재빨리 짐을 싸서 호텔방을 빠져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호텔 건물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건물에서는 연기나 불꽃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경보음이 꺼지고 직원이 나와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경보가 잘못 울린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다른 사람들은 맨 몸으로 나왔는데 우리만 모든 짐을 싸들고 나왔다. 우리는 머쓱했다.오늘은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이다. VINCENT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들어가니 재미있는 시계가 우리를 맞이한다.시계 안에서 사람이 5분 마다 분침을 지웠다가 그린다. 5분 동안 기다리면서 귀를 후비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며 지루하다는듯이 딴짓을 한다. 실제로 저 통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시계였다. 아이디어가 돗보이는 시계다. Militia Company of District II under the Command of Captain Frans Banninck Cocq, Known as the ‘Night Watch’, Rembrandt van Rijn, 1642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 이 작품 앞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아내도 열심히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다. The Milkmaid, Johannes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