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보다 잘 걷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729km를 걸으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마 중도에 포기할 거야. 못 걸을 거야. 힘들거야. 미리 겁을 먹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는 느리지만 꾸준히 매일 걸었다. 중도에 위기가 있긴 했다. 걷기 시작한지 7일 째 되는 날, 발에 물집이 여러 군데 생겼고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발을 땅바닥에 디딜 때마다 수십개의 바늘이 발바닥을 찌르는 듯 했다. 배낭을 집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지팡이가 거슬렸다. 걷는데 방해됐다. 그래서 지팡이를 버렸다. 그랬더니 걷기가 좀 나아졌다. 지금도 그 길에 지팡이가 남아있을까 궁금하다.산티아고에서 포르토까지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갔는데 3시간 걸은 것보다 더 피곤했다. 멀미가 나고 어..
오늘은 팜플로나로 간다. 우리가 산티아고길을 생장에서 시작하지 않고 팜플로나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는, 우선 우리의 체력을 믿을 수 없었다. 생장에서부터 시작하면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그러면 초장에 체력이 바닥나서 며칠 못가 포기할까봐 염려되었다. 산 위에서 나는 더이상 못가, 포기야, 이러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쉽게 시작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생장부터 산티아고길을 시작했어도 우리는 충분히 완주할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의 체력을 너무 몰랐고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처음 걸을 땐 힘들지만 걸을수록 체력은 좋아지고 덜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걸을수록 체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
햇볕이 뜨거웠다.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그늘에서는 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겉옷을 통해 전해졌다.문득 작년 산티아고길을 걸을 때가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고 있었다. 뜨겁고 강렬했던 햇볕 아래 하루 평균 25km의 길을 매일 걸었다. 땀은 쏟아지고 살갗은 햇빛에 타고 다리와 발바닥은 통증으로 아프고, 그래도 계속 걸었다. 만일 일년 내내 걸으라고 한다면 걸을 수 있을까?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걸으면서 보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난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정말? 정말이다.남은 소원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걷는 것이다. 걷고 마시고 쉬고 잠자는 것의 끝없는 반복순환. 이것만큼 완벽한 인생이 없다는 것을 나는 산티아고길에서 ..

오늘 걷는 거리는 25km, 산티아고길 첫날이다. 지도를 보니 중간에 산을 하나 넘는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다. 잠은 잔듯 만듯 했다. 커다란 체육관 한가운데서 누워있는데 주변에서 코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침대 삐걱이는 소리, 온갖 소리가 체육관을 울리는 가운데 겨우 잠을 잤다. 화장실을 가려면 이층침대를 오르내려야 하고 침대 삐걱대는 소리가 엄청 신경쓰인다. 새벽이 되니 어느새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짐을 챙겨 나갔다. 우리는 씻고 화장실 볼일 보고 여유있게 나왔다. 그때까지 옆 침대의 한국 부부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 부부는 생장부터 걸어왔다는데 이날 이후로 우리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우리보다 더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속도를 늦췄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보..
여행은 항상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새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위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행을 왜 떠나는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구, 자유, 새로움. 뭐 이유는 많다. 이유가 있어냐만 떠나는건 아니다. 그냥 좋아서. 여행 자체가 좋아서. 여행 자체가 이유이기도 하다. 왜 사냐고 물으면 사는 것 자체가 이유이듯이. 어떤이가 말했다. 여행에는 동기가 필요없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여행은 이전의 나를 해체하고 새로운 나를 만든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나를 만든다. 그러면 왜 안떠나는가?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다. 현재의 일상이 파괴되었을 때 난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