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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뜨거웠다.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그늘에서는 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겉옷을 통해 전해졌다.

문득 작년 산티아고길을 걸을 때가 생각났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고 있었다. 뜨겁고 강렬했던 햇볕 아래 하루 평균 25km의 길을 매일 걸었다. 땀은 쏟아지고 살갗은 햇빛에 타고 다리와 발바닥은 통증으로 아프고, 그래도 계속 걸었다. 만일 일년 내내 걸으라고 한다면 걸을 수 있을까?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걸으면서 보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난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정말? 정말이다.

남은 소원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걷는 것이다. 걷고 마시고 쉬고 잠자는 것의 끝없는 반복순환. 이것만큼 완벽한 인생이 없다는 것을 나는 산티아고길에서 깨달았다. 원초적인 활동이 주는 만족감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한 호스텔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표를 보니 21시03분에 개찰구를 통과했다. 밤 9시가 넘었다.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숙소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을 듯.

밤 늦게 숙소에 도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위험하기도 하고 숙소를 찾는데 시간이 걸리면 너무 늦어진다.

늦은 시간엔 상점이 문을 닫아 요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지하철역을 나와 숙소를 찾으러 길거리를 걸었다.

숙소 찾기가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며 같은 곳을 몇바퀴 돌았지만 찾지 못했다.

어느 카페 앞에서 담배를 피는 미남 직원에게 길을 물었다.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알려주는데 막상 가보면 찾을 수가 없었다.

난감했다.

같은 구역을 서너 바퀴를 돌다가 소매치기도 만나고 점점 초조해졌다.

유명 관광지엔 소매치기들이 많다. 우리도 몇번을 당했다. 큰 피해가 있지는 않았지만 가방 지퍼가 열려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


소매치기들은 보통 2인 1조로 다니기도 하고 4~5명이 한 조로 다니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매치기는 남녀로 된 2인 1조 소매치기단이다. 등에 맨 배낭의 지퍼를 열다가 들켰다. 들켰어도 태연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가버린다.

소매치기 이야기를 더 해보자. 소매치기를 처음 만난 것은 파리에서 였다. 어린 여자애 둘이었는데 혼잡한 지하철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가방을 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가방을 확인하니 지퍼만 열리고 물건은 그대로 있었다. 소매치기가 누군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고 이들은 다른 동양 여자의 핸드백을 노렸다. 이것도 실패하고 소매치기를 알아챈 동양 여자는 여자애 둘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 둘을 주목했고 어떤 할머니가 그들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기도 했다. 그들은 결국 열차를 내렸고 우연히도 우리와 같이 내리게 됐다. 무슨 인연인지 얼마후 다른 역에서 다시 만났다.

또 한번은 5명의 여자 소매치기단이었는데 지하철 열차 안에서 한 사람을 빙둘러싸고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벽을 만든다. 한 사람이 지금 몇 시냐고 물으면서 시선을 빼앗고 그사이 뒤에 있던 다른 여자애가 가방을 연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현지인들이 있었지만 자기일이 아니라는 듯이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점이 좀 이상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난리가 나고 주변 사람들이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본 소매치기들은 항상 동양인을 노렸다. 그리고 소매치기들이 대부분 여자애들이었고 나이가 어렸다. 그 여자애들은 내가 보기에 10대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였다.

소매치기들이 동양인을 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금이 많고 부주의하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항상 가방을 꼭 껴안고 다닌다. 카페에서 식탁 위에 놓인 핸드폰도 없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소매치기를 뒤로 하고 숙소 찾기가 계속됐다. 주소는 cervantes, 5 3 dcha. 세르반테스 거리 몇 번지인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 어찌어찌 겨우 찾았는데 간판도 없고 조그만 문패로 이곳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JAEN'이라고 써진 문패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찾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입구의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우리의 옷차림세를 보고 호스텔 손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건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 우리는 윗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인자하게 생긴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나왔다. 이 분이 주인인 듯하고 혹시 하엔이 이 할머니의 이름일까 추측해 보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영어는 못하고 스페인말로만 얘기한다. 뭐 우리는 대충 알아듣고 이해할 수 밖에. 여권을 보여주고 숙박부를 작성하고 방을 안내받고 몇 시에는 문을 잠그니 몇 시까지는 들어와야 된다는 둥 주의사항을 듣고 마침내 우리는 짐을 풀고 쉴 수 있었다.


가격은 1박에 50유로, 세르반테스 거리!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저자 아닌가. 유명한 거리네. 이 주변엔 온통 숙박 업소가 즐비했다. 가까이에 유명 관광지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숙소는 아담하다. 침대 하나에 책상, 세면대, 옷장, 화장실. 세면대가 책상 옆에 있는 것이 좀 색다르다.


씻고나서는 일단 드러눕고, 와이파이 잡아서 인터넷 연결하고 SNS 삼매경.


배가 출출하니 슈퍼마켓에서 사온 1유로 짜리 계란 빵(양은 많은데 정말 싸다!)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남은 것은 내일 아침에 먹기로.


내 배낭, 앞으로 한 달을 들고 다녀야 한다. 보기만 해도 어깨가 아프다.

짐이란 가벼울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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