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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항상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새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위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행을 왜 떠나는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구, 자유, 새로움. 뭐 이유는 많다. 이유가 있어냐만 떠나는건 아니다. 그냥 좋아서. 여행 자체가 좋아서. 여행 자체가 이유이기도 하다. 왜 사냐고 물으면 사는 것 자체가 이유이듯이. 어떤이가 말했다. 여행에는 동기가 필요없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여행은 이전의 나를 해체하고 새로운 나를 만든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나를 만든다. 그러면 왜 안떠나는가?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다. 현재의 일상이 파괴되었을 때 난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하는 두려움, 낯선 외국인과 외국어에 둘러싸였을 때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 결국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어려움과 스트레스, 이걸 극복해 나가는 것에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걷기여행이 주는 이점 중에는 건강이 있다. 매일 걷는 것은 몸을 건강하게 한다. 발에 무리가 가고 물집이 잡히고 통증이 오기도 하지만 적응기간이 지나면 이것도 괜찮아진다. 난 만성요통에 시달렸는데 처음 하루는 요통이 있었지만 며칠 지나자 오히려 요통이 없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걷기가 요통의 치료제였다. 요통은 걸으면서 치료되었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싸면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충만해진다. 성취감도 있다. 내가 생각보다 잘 걷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20대에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해본 이후에 가장 많이 걸었다. 29일을 쉬지않고 매일 걸어 729km를 걸은 경험은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걷기여행은 중독성이 있다. 돌아온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


산티아고길의 매력은 무엇일까? 저렴한 여행경비, 친구 사귀기, 맛있는 스페인 음식, 걷기를 통해 얻는 성취감, 운동을 통해 느끼는 건강함과 기분좋아짐과 스트레스 해소. 산티아고길을 같이 걷는다는 유대감이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한다. 경험을 공유하는데서 느끼는 동질감은 모두를 친구로 만든다. 내 생애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외국인과 대화하고 쉽게 친구가 되기는 처음이다. 놀라운 마법같은 경험이다. 지금은 그때의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생각은 뒤에 온다. 어떤 의미였는지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나빴는지, 조금씩 꺼내서 생각해본다.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다시 떠나기를 꿈꾸고 있다. 여행은 어떤 중독같은 거다. 계속 생각나고 바라게 된다. 일상이 힘들수록 말이다. 혹시 또 모른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정리하고 훌쩍 떠나버릴지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아쉬움이 커졌다. 이제 며칠 있으면 도착인데, 계속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을때까지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하루종일 걷기만 해도 행복했다.


걷기의 매력에 빠져 걸어서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책 <나는 걷는다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떠날 것인가, 노년의 문턱에 서있다.

언제 멈추어야 하는가.

언제 움직이는 것도 멈추고 걷는 것도 멈추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멈추고 상상하는 것도 멈추어야 하는가.

지나가는 시간을 언제까지 우습게 여길 수 있을까.

자기 몸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몇 살 때까지일까.

이성을 발휘하는 시기, 다른 말로는 포기를 배우는 시기는 언제 찾아오는가.


결국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여행도 끝나고 인생도 끝난다. 끝을 담담이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행은 끝났고 다시 떠날 날은 기약은 없다. 인정해야 한다. 좋은 날은 끝났다는 것을. 

이제 포기를 배우는 시기다.  지난 여행을 글로 쓰며 되돌아보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떠났다. 정말 계획없이 떠났다. 이건 몇년 간의 여행내공 덕분이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경지.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걷자고 말을 꺼낸 것은 아내였다. 난 놀랬다. "정말 800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겠어? 한 달 동안 계속 걸어야 해. 할 수 있겠어?" 그녀의 체력을 아는 나로서는 그녀의 결정이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무모해 보였다. 그녀는 아마도 중간에 포기할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난 망설였다.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산티아고 길에 대한 동경은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마음을 접고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산티아고길을 가자고 먼저 얘기한다. "너 할 수 있겠어?" "가는데까지 가보지 뭐." 무모한건지 겁이 없는건지. 늘 이렇다. 결단은 과감하게 한다. 그녀는 어찌 될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편이다. 난 정반대다. 결단하지 못하고 고민한다. 어떻게 할지, 해도 좋을지, 그러니 늘 꾸물거린다. 행동이 느리다. 생각은 많고 결정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면 밀고 나간다. 시작이 어렵지 그 이후는 쉽게 간다.


여행을 떠나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타로점을 쳤다. 결과는 '떠나라'였다. 세 장의 카드를 뽑았는데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 두 사람과 여섯 개의 칼, 모험을 떠나는 바보, 화목한 가정과 풍요로움의 열 개의 별. '바보처럼 떠나라, 고난이 있겠지만, 결국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난 이렇게 해석했다. 안심했다. 떠나도 좋을 것 같았다. 타로카드를 믿기로 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난 이성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인데 가끔은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믿기도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떠났다. 무작정, 무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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