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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걷는 거리는 25km, 산티아고길 첫날이다.

 

지도를 보니 중간에 산을 하나 넘는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다.

 

잠은 잔듯 만듯 했다. 커다란 체육관 한가운데서 누워있는데 주변에서 코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침대 삐걱이는 소리, 온갖 소리가 체육관을 울리는 가운데 겨우 잠을 잤다. 화장실을 가려면 이층침대를 오르내려야 하고 침대 삐걱대는 소리가 엄청 신경쓰인다.

 

새벽이 되니 어느새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짐을 챙겨 나갔다. 우리는 씻고 화장실 볼일 보고 여유있게 나왔다. 그때까지 옆 침대의 한국 부부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 부부는 생장부터 걸어왔다는데 이날 이후로 우리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우리보다 더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속도를 늦췄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보고 못보는 만남들도 있고 걷는 내내 계속 만나는 경우도 있다. 걷는 속도가 비슷한 경우 한 달 동안 계속 만나게 된다. 그런 경우엔 정말 친해지게 된다. 조식을 먹으러 알베르게 건너편 카페로 갔다. 조식은 간단했다. 커피와 오렌지주스와 크로와상이다.

카페는 한가하다. 사람들은 조식을 먹지 않고 가는 듯했다. 아마 가다가 중간에 쉬는 때에 식사를 해결하는 모양이다. 끝 테이블에 한국사람인 듯한 아저씨가 보인다. 합석을 했다. 인사를 건넸다. 한국사람이다. 60대 중반의 김씨 아저씨, 정년 퇴직하고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한다. 김씨 아저씨는 식사를 끝내자 곧 바로 출발했다. 우리는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몇사람 더 카페에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카페는 새벽 6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우리도 그때쯤 들어와서 6시30분 쯤 카페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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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쁠로나 시내를 벗어나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토요일이라 시내도 한적했다. 공원도 지나고, 나의 긴 그림자를 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이건 서쪽으로 걷는다는 뜻이고 새벽 해를 등지고 걷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시내를 벗어나면 시골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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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만 잘 쫓아가면 된다. 윗 사진의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가게 된다. 대단하지 않은가? 걸어서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 가다니, 난 정말 첫날 놀라움을 느꼈다. 하루종일 걸어서 내 앞에 있던 먼 산이 어느새 내 뒤의 먼 산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느리게 걸어서도 아주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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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보리밭, 감탄하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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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한국 사람을 또 만났다. 큰 배낭을 멘 젊은 여자였는데 매우 힘겨워 보였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걷는다고 한다. 하루에 대략 10~15km만 걷는다고. 그래서 아주 천천히 간다고 했다. 그녀는 더 쉬겠다고 해서 우리는 먼저 길을 떠났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사람을 또 만났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냥 인사만 하고 급히 우리를 앞질러 갔다. 걸음이 매우 빨랐다. 우리가 쫓아갈 수 없는 속도였다. 이 사람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고 밥도 같이 먹게 된다.
산티아고길을 걷다가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간혹 한국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다는 듯이 인사만 하고 급히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땐 좀 서운하기도 하다. 반대로 만나면 정말 반가워서 한참을 수다를 떨고 먹을 것을 나눠 주기도 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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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오르막, 드디어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쉴 곳을 찾아야 할 텐데...
나무 그늘이 있는 쉼터 발견,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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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가끔 돌무더기 위에 십자가가 꽂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길을 걷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걷다가 생을 마감했으니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이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 않은가.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집에서부터 1만 km를 넘게 달려온 저 할아버지의 행복한 미소를 보라. 왜 이 길을 달리는지 알 수 있지 않는가. 길 위에 있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걷고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프고 발이 아픈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큰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걷고 쉬고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이 모든 것이 행복한 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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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웃음이 매력적인 동규씨와는 다음 마을에서 다시 만나서 같이 얼굴 인증샷. 동규씨 혹시 이 사진보게 되면 연락해요~

자, 계속 올라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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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땅만 보고 걷게 된다. 풍경을 볼 여유가 없다. 그래도 잠시 숨 한번 돌리고 먼 산 한번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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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록색으로 덜 익은 것은 밀밭이다. 보리는 밀보다 먼저 익어서 누렇고 추수하기 직전이다.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이 8.4km 남았다고 써진 이정표, 그때는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쳤는데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이제야 보인다.
드디어 용서의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다.


순례자의 모습을 표현한 유명한 조각품이 보인다.
우리도 조각품처럼 인증샷을 찍어본다.


근처에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노점도 있고 사람들은 한참을 여기서 쉬다가 간다.


윗사진에서 왼편에 서울까지 9700km라는 이정표도 있었는데 저 때는 몰랐다. 이번에 글을 쓰며 그런 이정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미국인 가족과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북한 때문에 무섭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때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 때문에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은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지금은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어떤 미국인 여자애는 온몸에 베드버그가 물린 상처가 가득했다. 모기 물려서 부어 오른 것처럼 팔이며 다리에 벌레 물린 자국이 있었는데 정작 여자애는 모기에 물린 것이라며 별일 아닌듯 웃어 넘긴다. 아내는 그 상처를 보며 기겁을 했고 베드버그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됐다.
외국인들과 한동안 수다를 떨다가 다시 출발했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무사히 이 길을 완주하기를 기원하며 우리도 미니 돌탑을 쌓았다. 아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 우리가 쌓은 탑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염원을 담아 돌탑을 쌓았다. 지금도 남아있을까?
내리막길이 온통 자갈밭이라 발이 앞쪽으로 쏠리며 발바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런식이면 며칠 안가 물집이 잡히겠는걸.


뒷보습만 찍으면 재미없으니 앞모습도 찍어보고, 이 날은 첫날이라고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내 사진은 별로 없다. 이것이 사진사의 비애다. 셀카를 찍어봐야 얼굴만 크게 나올테니 재미없는 사진이 된다.
내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그림자 사진, 누렇게 익은 보리밭 너머로 마을이 보인다.


마을에 도착, 마을 이름은 우떼르가(Uterga).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익숙한 트렉터도 보이고(나도 예전에 트랙터 몰아본 농사꾼이라고)


농사를 지어본 경험 때문인지 농작물이나 농기계를 보면 관심이 간다.
그래서 보리밭, 밀밭이 단지 풍경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언제 심었고 언제 수확하고 씨앗은 어떻게 뿌렸고, 수확은 어떻게 하고, 이렇게 농업인의 눈으로 보게 된다.
쉬다 가자고, 이제 의자만 보이면 앉게 된다.


때마침 광장에서 무슨 행사인지는 모르지만 공연이 펼쳐진다.
무슨 춤인지 몰라 '막대기춤'이라고 이름붙였다.

 

 

여유있게 공연 관람을 마치고 다시 걷자고.
자전거족도 지나가고


우리도 브롬톤 타고 산티아고길을 다시 올까 생각해보지만 오르막에서는 자전거가 짐이고 그래서 죽음이다. 반면 내리막은 신나게 간다. 내리막에서만 자전거가 부럽다.
심심하니 그림자 놀이.


이름모르는 시골 성당에서도 인증샷.


마침내 '뿌엔떼 라 레이나'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야 도착한 것이다.
알베르게 로비에 배낭을 내려놓자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계산해 보니 우리는 시속 3km의 속도로 쉬는 시간 포함해서 9시간을 걸어왔다. 남들은 시속 4km의 속도로 낮 12시 전후로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우리는 보통 빠르면 오후 2시, 3시 늦으면 5시, 6시에 도착했다. 느리게 걷기도 하고 또 오래 쉬기도 해서 그렇다. 출발시간은 비슷한데 도착시간이 넘 늦다. 늦게 도착하면 숙소 잡기도 힘들고 쉬는 시간도 부족하다. 빨래도 해야하고 밥도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직하게도 걸었다. 그냥 12시까지만 걷고 중간마을에서 쉬어도 되는데 왜 그랬는지 그날 정해진 목적지까지 어떻게든 걸어갔다. 발에 물집이 생겨 죽을만큼 힘들어도 그날의 목적지까지 걸었다. 이상한 집념이었다.

이렇게 힘든데 도대체 왜 걷는거지?

마지막 사진은 예쁜 보리밭 사진, 저 보리를 수확해서 맥주가 만들어진다. 땀흘려 걸은 뒤에 마시는 맥주는 환상적이다.


 

마오 맥주, 레몬이 첨가된 것이 더 맛있다.
2017.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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