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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보다 잘 걷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729km를 걸으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마 중도에 포기할 거야. 못 걸을 거야. 힘들거야. 미리 겁을 먹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는 느리지만 꾸준히 매일 걸었다.
중도에 위기가 있긴 했다. 걷기 시작한지 7일 째 되는 날, 발에 물집이 여러 군데 생겼고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발을 땅바닥에 디딜 때마다 수십개의 바늘이 발바닥을 찌르는 듯 했다. 배낭을 집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지팡이가 거슬렸다. 걷는데 방해됐다. 그래서 지팡이를 버렸다. 그랬더니 걷기가 좀 나아졌다. 지금도 그 길에 지팡이가 남아있을까 궁금하다.
산티아고에서 포르토까지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갔는데 3시간 걸은 것보다 더 피곤했다. 멀미가 나고 어지러웠다. 한 달 만에 타는 자동차였다.
포르토는... 재미없었다. 관광은 이제 흥미를 잃었다. 산티아고의 친구들이 생각났고 그리웠다. 다시 그 길로 돌아가고 싶었다. 기분은 급격히 다운됐다. 홧김에 산티아고에서 함께한 배낭과 신발을 버렸다. 고통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포르토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 안, 우리 뒷자리에 앉은 미국 할머니가 옆사람과 떠드는데 신경이 쓰인다. 한 달 동안 산티아고길을 걸었는데 너무 좋았다, 포르토에 머물다가가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할머니의 수다는 계속 됐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선반의 짐을 내리다가 할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할머니가 아내의 모자에 있는 노란화살표와 camino de santiago라는 글자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너희들 어느 까미노를 걸었니?”
“프랑스길이요.”
할머니는 너무 반가워하며 자기도 그 길을 걸었는데 어땠냐고 물었다.
“원더풀”이라고 대답하자 “그레이트”하며 신나했다.
자기는 캘리포니아에서 왔고 두 달 동안의 휴가를 끝내고 내일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도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년에 리스본에서 포르토를 거쳐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포르투갈길을 걸을 계획이라고 한다.
“유 아 그레이트”
피부는 구리빛으로 빛났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할머니는 혼자였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바람처럼 걸었다.
공항 출국장을 빠져 나가기 전에 우리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good luck to your way and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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