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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팜플로나로 간다.
우리가 산티아고길을 생장에서 시작하지 않고 팜플로나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는, 우선 우리의 체력을 믿을 수 없었다. 생장에서부터 시작하면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고 그러면 초장에 체력이 바닥나서 며칠 못가 포기할까봐 염려되었다. 산 위에서 나는 더이상 못가, 포기야, 이러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쉽게 시작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생장부터 산티아고길을 시작했어도 우리는 충분히 완주할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의 체력을 너무 몰랐고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처음 걸을 땐 힘들지만 걸을수록 체력은 좋아지고 덜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걸을수록 체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 늘어나고 걸을수록 더 잘 걷게 된다.
물론 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평소 무릎이 안좋았다면 무릎이 계속 아플수도 있고 심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경우 다양한 예방책이 있으니 미리 숙지하고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무릎이나 발목이 안좋으면 보호대나 테이핑법을 쓴다던지,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 발가락 양말과 바세린을 사용한다던지 하는 대비책을 세우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그러지를 못했다.
어쨌든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은 생장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가게 된다면 당연히 생장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사리아에서 멈추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건너뛰고 그곳에서부터 피스테라까지 걸을 것이다. 사리아에서 멈추는 이유는 그곳부터 사람들이 엄청 많아진다. 그래서 숙소잡기가 어려워진다. 사람은 많고 숙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산티아고길을 가고 싶은 바램이 있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 번 간 곳을 왜 또 가냐고.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길은 같지만 경험은 같지 않을 것이라고.
편안했던 숙소 호스탈 야엔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내 머리 위쪽에 하얀색 조그만 문패가 보인다. 이것이 숙소의 주소겸 간판이다. 밤에는 저 글씨가 안보이니 찾느라 고생할 수 밖에. 뭐 알아서 찾아오라는 식이다.
팜플로나로 가기 위해서는 고속열차 렌페를 타야하고, 렌페를 타려면 아토차역으로 가야한다. 숙소 근처의 지하철역으로 간다.
유럽 사람들도 기다릴 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
아토차역에 도착해서 기차표를 사려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아무도 제지하는 이가 없다. 그냥 놔둔다.
인터넷으로 표를 미리 사면 현장 매표소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고 기차표도 자동발매기로 바로 뽑을 수 있다. 현장 구매가 이렇게 불편한지는 이번에 알았다. 아마 다음엔 온라인으로 구입할 것이다.
마침내 기차표를 사고 시간이 남아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근처 카페로 가서 샌드위치와 커피, 물을 샀다.
안뺐어 먹을테니까 천천히 먹어. 양 손에 꼭 쥐고 둘 다 다 먹을 기세다.
아직 팜플로나행 기차의 플렛폼 번호가 확정되지 않았다. 플렛폼 번호는 기차가 출발하기 10분 혹은 5분 전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잘 보고 있어야 한다. 플렛폼 번호를 알아야 올바른 곳에서 기다릴 수 있고 기차를 놓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안내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플렛폼 번호가 떴고 기차를 탔다. 출발이다.
팜플로나역에 도착했다. 사진의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마드리드 아토차에서 팜플로나역까지 3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숙소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걸어갈 수도 있으나 태양이 뜨거웠고 도심을 몇 시간 걸어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노선과 시간표를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택시를 타면 편할텐데 우린 택시를 탈 생각을 잘 안한다. 비싸기도 할 테고, 버스나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 택시 탈 이유가 없기도 하다.
버스 기사에게 물어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린다.
숙소까지 좀 걸어야 한다.
걷다가 소몰이 동상을 발견했다. 팜플로나가 소몰이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계속 걷는다. 숙소는 언제 나오는거야.
마침내 알베르게 도착. 산티아고길 순례자 숙소를 '알베르게'라고 부른다.
공립(municipal) 알베르게이고 침대가 114개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봤을 때는 숙박비가 7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는 더 비쌌다. 그동안 가격이 오른 것이다. 만일 생장에서 출발했다면 알베르게 정보가 담겨있는 프린트물을 받을 수 있었을테고 거기엔 알베르게의 자세한 정보(위치, 가격, 침대수, wifi 제공여부, 연락처 등등)가 나와있다. 굉장히 중요한 자료인데 우리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다녔다.
숙박비를 계산하고 내일 아침 조식권도 구입했다. 아침밥은 건너편 카페에서 제공한다고 직원이 알려줬다.
안에 들어가니 큰 체육관에 들어온 듯했다. 지붕이 높고 침대들이 쭉 늘어서 있고 우리는 계단을 올라 이층에 있는 침대를 배정 받았다. 여기서 처음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바로 옆 침대에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생장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이 부부와는 더이상 만날 수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다.
메모장에 남겨진 그날의 간단한 기록이다.
팜플로나 albergue de jesús y María에서 잤다. 드디어 순례의 시작이다. 알베르게를 들어서자 리셉션에서 스페인 할머니가 우리를 맞이한다. '올라'. 영어를 못하는 할머니는 두 손을 마주잡고 잠자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너희 자고 갈거니?' 말이 안통하면 바디랭귀지가 있다. 조식 포함 일박 요금이 11.5 유로. 잠만 자면 8유로. 우린 조식이 포함된 걸로. 조식은 건너편 cafe teo에서 아침 6시30분부터 8시까지란다. 크레덴시알을 2유로에 사고 스템프를 찍고 날짜를 적어준다. 침대를 배정받고 배정받은 2층 69,70번 침대에 짐을 풀었다. 할머니가 준 침대 시트와 베게보를 씌웠다. 여기서 처음으로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생장부터 시작해서 3일째란다.
아침 6시 여기저기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침대 이층을 오르내리기가 아슬아슬하다. 침대가 부서질듯 삐걱거린다. 알베르게 숙소는 마치 집단수용소 숙소를 연상시킨다. 큰 하나의 공간에 1층과 2층으로 100여개의 2층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거리 구경도 하고
상점에 들러 조가비 대신 조개 뱃지를 샀다. 커다란 조개껍데기 보다는 작은 뱃지가 더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다. 뱃지는 모자에 달고 다녔다. 이렇게.
가게에는 온갖 필요한 물건들을 다 팔고 있다. 배낭에서부터 지팡이, 모자, 비옷, 양말 등등 트레킹을 할 때 필요한 물건은 모두 있다. 주인 아저씨는 한국말로 인사도 한다.
한국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을 실감한다.
배고프다. 광장으로 가서 적당한 카페를 찾아서 밥을 먹자.
먹을 것 앞에서는 미소가 절로 난다.
내일부터는 진짜로 걷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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