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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이

무니muni 2018. 8. 10. 19:17

조이는 여러번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 몇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 아마 5살이나 6살 때 쯤? 집앞에서 신나게 뛰어가다 돌부리에 걸려 개천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에서는 피가 철철나고, 조이는 울었다. 눈앞은 잘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줄을 잡고 내려왔다. 차가운 수술대. 양팔을 붙잡은 간호사들. 울부짖는 아이.

떨어지던 순간, 잠깐 아주 잠깐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는 추락. 무(無).

지금도 조이의 오른쪽 이마에 큰 흉터가 남아있다. 그때의 수술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니면 너무 큰 상처라 그렇게 밖에는 수술하지 못했을까. 몸 상태가 안좋으면 이마의 흉터가 붓고 아프다.

그때의 추락은 사고였다. 정말 사고였을까? 무언가가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아닐까?


조이가 자살하려고 했던 때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 전투방위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출퇴근 군인, 남들 보기에 군대같지도 않은 군대. 18개월 근무. 그 18개월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얼마나 출근하기 싫었는지. 군대라는 곳은 갈 곳이 못된다. 지금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명령과 복종의 조직, 그게 군대다. 하라면 해야한다. 개인의 자유는 없다. 조직, 집단이 최우선이고 상사의 명령만이 있을뿐이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황당하고 부당한 것 투성이다. 선임들은 툭하면 부하들을 괴롭히고 구타한다. 인간 말종의 놈들이 많다. 뭐 괜찮은 선임도 있기는 하지만 못된 놈들이 항상 문제다. 어쨌든 18개월 동안 부대로 출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근은 곧 탈영이다. 조이는 3일동안 탈영했다. 자살을 계획했으므로 탈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은 조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11살. 조이의 어머니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갔다. 나갈 때의 마지막말이 기억난다. 데리러 올테니까 기다려. 그리고 조이는 기다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지 않았고 평생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말은 거짓이었다. 40년이 지났다. 딱 한번 만났다. 10년이 지난 21살 때. 그땐 어렸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모든게 힘들고 고통 속에서 방황하던 때였다. 한번 만났다고 조이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가슴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어릴 때 엄마 없이 지낸다는 건 큰 슬픔이다. 조이의 아버지는 일을 하느라 바뻤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어머니를 대신 할 수는 없었다. 새어머니는 괴팍한 사람이었고 조이에게 소리지르며 호통치기 일쑤였다. 매일 혼나기만 했다. 그여자에게 온정을 바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부모의 사랑 대신 이성의 사랑을 원했지만 조이는 미숙했고 이성의 사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조이를 외면했고 조이는 항상 외로웠다.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친구와 선배들은 조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괴로운지,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조이는 해답을 찾으려고 철학과에 입학했다. 인생이 무엇인지, 삶은 왜 이렇게 슬프고 고통스러운지, 인간은 왜 이렇게 고독한지. 그 해답이 철학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이는 삶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철학과 수업은 그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단지 해답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조이는 어렸고 미숙했다. 지혜도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당시의 학교 분위기도 문제였다. 연일 시위가 있었고 사회문제에 온통 관심이 쏠린 시기였다. 독재타도, 민주쟁취 등의 구호로 학교는 최루탄 연기로 매케했고 도심으로 연일 시위를 나가고 집회에 참석했다. 그속에서 조이는 개인의 구원이 절실했다. 학교는 사회의 문제로 시끄러웠다. 조이가 원하는 것은 살아야할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마음 한구석엔 이런 풀리지 않는 문제가 웅크리고 있었다.

자살을 시도한 것은 지금보면 참 우습다. 얼마나 미숙했는지. 왜 수면제였을까. 아마 그게 가장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듯 하다. 지금이라면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이다.


아침에 부대로 출근하러 집을 나섰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까. 남기고 싶은 말이 없어서였을까, 유서 따위 소용없는 짓이라 생각해서였을까. 어차피 다 끝인데 유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었을까.

버스를 탔다. 언제 약을 먹었을까. 아마 버스에 타고나서였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잠들어 죽으려고 했으니까. 졸렸다. 잠이 들었다. 잠이 깼다. 아직 죽지 않았다. 왜지? 왜 죽지 않았지? 당황스러웠다. 살아있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지? 다음 계획은 없었다. 죽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도서관으로 갔다. 책상에 업드려 잠을 잤다. 계속해서 잠을 잤다. 죽음대신 잠을 선택한 사람처럼. 혹시 자다보면 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수면제는 죽음에는 효과가 없었다.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었다. 결국 길에서 노숙을 했다. 춥고 배고프고,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조이는 달라졌다. 뭐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부대로 다시 출근했고 탈영병으로 낙인찍히고 일주일간 군기교육대 입소, 하루종일 군장을 매고 연병장을 돌았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삶은 계속됐고 고통에 둔감해졌다. 꿈을 꾼 것처럼, 꿈을 깨고나면 기억이 희미해지듯이 자살의 기억은 희미해져갔다.

자살에 실패했을 때, 왜 다시 시도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다른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포기했을까. 삶을 포기했듯이 죽음도 포기했다.

조이는 지금도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삶에서 더이상 이룰 것이 없을 때를 위해 남겨둔 비상 탈출구, 비참해지기 전에 최후의 존엄한 선택, 마지막 카드, 완성.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다. 삶이 고통스럽지. 삶에서 더이상 이룰 것이 없을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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