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제주에서 맞이하는 첫 장마비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비오는 날 운전은 평소보다 어렵고 위험하고 더 피로하다. 시야가 잘 안보이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운전이 어렵다고 요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비나 눈이 오면 운전을 피하고 싶어진다. 비나 눈이 오면 특히나 택시 잡기 힘든 이유가 많은 기사들이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비오는 밤 늦은 시각, 사거리 코너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고 택시를 부른다. 옆자리에 탔다. 머리 희끗한 중년의 남자다. 술냄새가 난다.“XX초등학교 쪽으로 가주세요.”“네.”흰머리의 남자는 금세 잠이 들었다.얼마후 잠에서 깬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한다.“여기가 어디요?”“ㅇㅇ 사거리입니다.”“뭐라구요? 왜 여기..
새벽 3시 쯤이었다. 사람이 드문 새벽 시간이라 차를 정차해 놓고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한 남자가 길 건너편에서 택시를 부른다. 차를 돌려서 그 남자를 태웠다.“내가 택시비 두둑히 줄테니 어디 좀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옵시다. 근처 성인용품점으로 갑시다. 비아그라를 사야하는데 후배보고 사오라고 했는데 그 자식이 쪽팔리다고 안사온다고 하네. 시발놈. 내가 나이가 70인데, 술집에서 아가씨랑 술먹다가 한 번 하자고 하는데 고추가 안서는거야. 그래서 술판 치우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 약사러 나온거야. 저기네. 좀 기다려 줘요. 내가 금방 갔다 올테니…... 어이, 계시오, 어이, 문 좀 열어주시오. 어이. 이런 불은 켜있는데 문이 잠겨있네. 영업 끝났나보네. 다른 곳으로 갑시다. 저 위로 가면 또 가..
어스름한 새벽에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 마당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가을이 은밀하게 오고 있다. 여름이 한창이지만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있다.한낮의 열기가 피부에 붙어서 끈적끈적하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창문 너머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넌 왜 밤에 우는거니? 멍청한 질문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밤에 먹은 커피 때문이다. 밤새 일해야 하니 졸지 말라고 커피를 마신다. 졸다가 위험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블랙으로 마시면 속이 쓰리다. 위장도 낡아간다.잠을 깨고 눈을 뜨니 사방이 훤하다. 멀리서 집을 짓는 공사장의 기계소음이 시끄럽게 들린다. 예전에 새소리에 잠을 깨던 산속의 아침이 떠오른다. 산속마을이라고 해서 기계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운기 소리, 트랙터 소..
밤이다. 그믐달이 보인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을 헤치고 산속으로 올라간다. 막다른 길에 건물 불빛이 보인다. 이런 외진 곳은 나도 무섭다.가방을 든 한 남자가 나온다. 택시에 탔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남자는 혼자말을 한다. 이렇게 빨리 온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내가 이곳을 먼 곳에서 일부러 올 일은 결코 없다. 근처에 왔는데 때마침 호출이 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오늘 운이 좋은 것이다.밤 운전은 힘들다. 빛이 없다는 것은 시야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고 사고날 확률이 높아진다.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도로에는 속도를 높이지 못하게 만든 둔턱이 여러곳 있다. 밤에는 이것을 잘 보고 속도를 줄여야 한다. 안그러면 큰 충격소리와 함께 몸이 위로 솟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