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미술관을 찾아가는데 날씨가 무척 더웠다. 삼십분 정도 걸었을까, 땀이 났다.샤갈 미술관에는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품들은 없었다. 사진을 못찍게 해서인지, 아니면 사진으로 남길만한 작품이 없어서였는지 남은 사진이 몇 장 없다. 그림 작품 한 점과 스테인글라스 작품들.Abraham Weeping for Sarah Marc Chagall Original Title: Abraham pleurant Sara Date: 1931; Paris, France미술관의 시청각실에 있는 샤갈의 스테인글라스 작품. 여기서 샤갈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했다.시간이 남아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티스 미술관도 관람하기로 했다. 여기도 촬영 불가라서 사진은 별로 없다.마티스의 스케치가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선으로 ..
니스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니스의 겨울은 따뜻했다. 제주도와 비슷한 기온이었다. 아파트 숙소에서 내려오니 1층에 부동산 업소가 있다. 업소 창문에는 니스의 부동산 매물의 사진과 가격과 위치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우리는 유심히 이 매물을 살펴 보았다. 눈에 띄는 물건이 보였다. 원룸 아파트가 한국돈 2억 정도 된다. 아내는 이 가격을 보더니 니스로 이사오고 싶다고 말한다. 바닷가로 나갔다. 해변에는 유명한 산책로가 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La Promenade des Anglais, 영국인 산책로)라고 부르는 해안가 도로로 약 7km에 이른다. 조깅, 자전거,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따뜻한 휴양도시라서 그런지 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해변을 산책하고 마세나 광..
오후 8시 45분, 프랑스 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졌고 사방은 어둡다. 버스정류장을 찾아서 98번 버스를 탔다. 20여분 달려서 우리는 Gambetta에서 내렸다. 우리가 머물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 숙소 주인에게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아파트 건너편 터키 음식점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잠시후 숙소 주인으로 보이는 프랑스 여자가 나타났다. 서로 인사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열쇠로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숙소의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20제곱미터의 크기의 원룸이고 발코니도 있어서 해변을 볼 수 있다. 해변이 측면으로 보이는 뷰였지만 해변이 가까워서 만족했다.간단하게 숙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는지 티브이는 어떻게 켜고 ..
안네의 집을 방문했다. 이곳은 안네 프랑크(1929~1945)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숨어 살았던 집이다. 안네가 살았던 다락방, 사진, 안네의 일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부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기념품 샵에서는 안네의 일기 한국어 번역본도 팔고 있었다. 안네의 가족은 누군가의 밀고로 독일경찰에게 잡혀가게 되고 포로수용소에서 가족 모두 죽게 되는데 유일하게 안네의 아버지만 살아남아서 안네의 일기를 출판하게 되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안네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일기에 적어놓고 있다. 열여섯의 짧은 생을 살다간 안네는 죽고나서 자신의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죽고나서 이룬 꿈이 무슨 소용인가. 고흐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인생일뿐이다. 안네의 꿈은 하루하루 일기를 쓰고 있..
그동안 암스테르담에서 머물던 학생기숙사에서 체크아웃하고 반 고흐 미술관 앞에 있는 호텔로 옮겼다. 여기서 마지막 1박을 하고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일정이다. 새로 잡은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종이를 한 장 주면서 읽어보고 서명을 하라고 한다. 대충 읽어보니 호텔방에서 마약을 하면 안된다는 확인서였다. 우리는 마약을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확인서에 싸인을 했다. 우리가 암스테르담에 오기 얼마전에 암스테르담에서 마약을 잘못 사용하다가 관광객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길거리의 전광판에 마약을 살 때 주의하라는 경고문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당시의 언론 보도다.호텔방에 짐을 풀었다. 작은 방이지만 아늑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서 관광을 하기에도 좋은 조건이었다.호텔방을 나와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더 호헤 벨루에 국립공원(De Hoge Veluwe National Park)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공원은 면적이 55제곱 킬로미터에 달하고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자연보호 구역 중 하나라고 한다.(wikipedia에서 참조)미술관에서 나오니 자전거 거치대가 보였다. 자전거가 수십대가 비치되어 있고 무료로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돌아갈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자전거는 서양 사람 키에 맞춰져서 안장이 높았다. 안장을 우리 키에 맞춰서 낮추었다. 1단 기어 밖에 없었지만 달리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브레이크는 페달을 뒤로 돌리면 작동되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자전거의 나라답게 자전거도 최첨단이었다. 국립공원 안이라 자동차도 다니지 않고 거의 ..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찾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버스를 두 번 갈아 탄다. 한적한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미술관이 있다.크뤌러 뮐러 미술관은 반 고흐 미술관 다음으로 고흐의 작품이 많은 곳이다. Vincent van Gogh, Café Terrace at Night, 1888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유명한 작품이다. 사실 이 그림을 보러 이곳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Vincent van Gogh, The Potato Eaters, 1885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The sower, Vincent Van Gogh, 1888 고흐, 씨뿌리는 사람 Chestnut Tree in Blossom Painted May 1890 in Auvers-sur-Ois..
렘브란트의 집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이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살았던 집인데 렘브란트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의 작픔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초록색 대문, 빨간색 덧창, 파란색 유리창, 알록달록 예쁜 집이다.그당시에 쓰던 주방기구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지금의 우리는 정말 편리한 시대를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렘브란트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 밥을 사먹었다. 비빔밥 비슷한데 잘 먹는다.암스테르담 시내를 늦게까지 쏘다녔다. 야경이 아름답다.암스테르담에는 정말 특별한 것이 있다. 커피숍에 가면 합법적으로 마약을 구할 수 있고 홍등가가 시내에서 합법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서 합법적인 매춘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안락사와 동성결혼도 허용된다. 정말 관용이 넓은 나라다.
전날 슈퍼에서 사온 재료들로 간단한 아침밥을 만들어 먹는다. 바게트빵 속을 잘라서 야채와 치즈를 발라서 먹는다.밤에 호텔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한밤중에 화재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우리는 재빨리 짐을 싸서 호텔방을 빠져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호텔 건물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건물에서는 연기나 불꽃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경보음이 꺼지고 직원이 나와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경보가 잘못 울린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다른 사람들은 맨 몸으로 나왔는데 우리만 모든 짐을 싸들고 나왔다. 우리는 머쓱했다.오늘은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이다. VINCENT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들어가니 재미있는 시계가 우리를 맞이한다.시계 안에서 사람이 5분 마다 분침을 지웠다가 그린다. 5분 동안 기다리면서 귀를 후비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며 지루하다는듯이 딴짓을 한다. 실제로 저 통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시계였다. 아이디어가 돗보이는 시계다. Militia Company of District II under the Command of Captain Frans Banninck Cocq, Known as the ‘Night Watch’, Rembrandt van Rijn, 1642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 이 작품 앞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아내도 열심히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다. The Milkmaid, Johannes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