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청년이었다. 미래가 불안한 모양이다. 내게 대뜸 물었다.“결혼을 곧 할 예정인데요, 아이를 낳는 것이 좋을까요, 안낳는 것이 좋을까요?”“아이를 낳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이 많지요. 아이를 안낳는다는 사람을 사회는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요. 제가 보기엔 아이를 안낳는 편이 좋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듭니다. 아이가 없으면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아이에 얽매이지 않아 시간적으로도 자유롭습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부모님들이 반대하셔서 고민이네요.”아이를 낳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 최소 20년이다. 그 기간동안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성인이 된 이후엔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간다. 이때부터 부모와 자식..
오늘 걷는 거리는 25km, 산티아고길 첫날이다. 지도를 보니 중간에 산을 하나 넘는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다. 잠은 잔듯 만듯 했다. 커다란 체육관 한가운데서 누워있는데 주변에서 코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침대 삐걱이는 소리, 온갖 소리가 체육관을 울리는 가운데 겨우 잠을 잤다. 화장실을 가려면 이층침대를 오르내려야 하고 침대 삐걱대는 소리가 엄청 신경쓰인다. 새벽이 되니 어느새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짐을 챙겨 나갔다. 우리는 씻고 화장실 볼일 보고 여유있게 나왔다. 그때까지 옆 침대의 한국 부부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 부부는 생장부터 걸어왔다는데 이날 이후로 우리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우리보다 더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속도를 늦췄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보..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일 수도 허구일 수도 있습니다.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하게 거짓으로 꾸밀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말을 허구라고 위장할 수 있으니까요. 거짓말로 진실을 말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도대체 왜 글을 쓰려는 걸까요. 이 질문은 나는 도대체 왜 살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과도 비슷합니다. 살려는 욕구는 본능입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려는 것도 나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본능입니다. 나를 표현해서 나에게 얻어지는 것이 ..
멀리 수평선에서 파도가 몰려 온다야자나무 잎이 거세게 흔들린다센 바람은 큰 물결을 몰고온다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너울은 더 커진다너울은 검은 바위에 부딪치고하얀 파도로 부서진다너울이 높을수록 파도는 높이 솟구친다하얀 거품을 흩뿌리고 파도는 사라진다바다로 되돌아 간다 어제 밤에는 공항에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이 많았다.강풍 탓에 비행기가 연착됐고 밤 11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공항에는 택시를 타려는 사람으로 북적였다.사람은 많았고 택시는 별로 없었다. 난 공항과 시내를 계속 왕복했다.사람들은 오랜 시간 제주의 매서운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서 있어야 했다.젊은 남자가 조이의 택시에 탔다.“한림항으로 가주세요.”“네. 오래 기다리셨죠.”“택시 잡기 너무 힘드네요. 바람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드네요.”조이는 택시를 몰..
조이는 여러번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 몇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 아마 5살이나 6살 때 쯤? 집앞에서 신나게 뛰어가다 돌부리에 걸려 개천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에서는 피가 철철나고, 조이는 울었다. 눈앞은 잘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줄을 잡고 내려왔다. 차가운 수술대. 양팔을 붙잡은 간호사들. 울부짖는 아이.떨어지던 순간, 잠깐 아주 잠깐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는 추락. 무(無).지금도 조이의 오른쪽 이마에 큰 흉터가 남아있다. 그때의 수술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니면 너무 큰 상처라 그렇게 밖에는 수술하지 못했을까. 몸 상태가 안좋으면 이마의 흉터가 붓고 아프다.그때의 추락은 사고였다. 정말 사고였을까? 무언가가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아닐까? 조이가 자살하려고 했..